롤랑 바르트 ‘장난감’

‘humanity of touch’란 표현에 사로잡혀서 오래토록 기억하게 된 글이다. 무엇으로 만든 물건을 고르겠는가? 목재, 철재, 가죽, 천소재.. 각자의 취향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특정 소재나 물건에 대한 호감 뒤에 깔린 우리의 생활양식을 돌아보게 되었다. 바르트는 글 속에서, 이해하면서 직접 만들어가는 것에서 멀어져,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편리하도록 만들어진 것을 구입하고 사용하기에 집중하는 게 요즘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소비에 중독된 어른들은 자신들이 소비하는 물건의 미니어쳐를 장난감으로 아이들의 손에 쥐어주고, 그 아이들은 원리와 작동에 대한 호기심이나 인간적인 감각에서 멀어진 채 소비자로서 키워진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플라스틱 장난감과 나무 장난감을 대조시키면서 그 촉감과 소리, 고장날 때의 상황을 설명하는데, 독자로서 직접 만지고 듣고 보는 듯한 즐거움이 있다. 글을 다 읽은 후엔 ‘따악-‘하고 스스로 소리를 먹는 듯한 나무의 둔탁하지만 깔끔하고도 정감가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내가 이 글을 읽은 것은 Twenty-five Great Essays에서 였는데, 본래 이 에세이는 바르트의 Mythologies에 실린 글이며, 동문선에서 <<현대의 신화>>라는 번역서도 냈다고 하니 직접 찾아 읽어보고 싶다.

 
 

‘물질만능주의적 장난감의 상황은 온통 기능적인 그 형태에서 뿐만 아니라 그 재질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 이 시대의 장난감은 품위없는 소재로 만들어진 화학물이지, 자연물이 아니다. 요즘은 많은 장난감들이 복잡한 혼합물로 만들어지는데, 그 소재인 플라스틱은 역겨우면서도 깨끗한 겉모양으로 모든 즐거움, 사랑스러움, 촉감의 인간성을 파괴시킨다.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따뜻한 촉감을 가져서 장난감의 이상적인 소재인 목재가 점점 사라져간다는 것은 실망스런 표지이다. 목재는 그것이 지탱해주는 모든 형태에서 날카로워서 상처를 줄 수 있는 모서리의 모든 특징과 금속의 화학적인 차가움을 제거한다. 아이가 그것을 만지작거리고 두드려도 목재는 진동하거나 삐걱거리지 않으며, 예리하면서도 덮인 소리를 낸다. 목재는 친숙하면서도 시적인 물질로, 아이를 나무나 탁자나 바닥과의 가까운 관계에서 끊어내지 않는다. 나무는 상처를 주거나 부서지지도 않는다. 그것은 산산조각나지 않고 닳아 없어지며 오래 가서 아이와 함께 살면서 물체와 손 사이의 관계를 조금씩 변화시켜간다. 목재가 죽는다면 그건 스프링이 고장나서 탈장 상태로 사라져버리는 기계적 장난감처럼 부풀어 올라 죽는 것이 아니라, 점점 줄어들어서 죽는 것이다. 나무는 늘 필요한, 필수적인 물건들을 만든다. 하지만 이제는 동물들이 있었던 보주산맥(the Vosges)의 목공 농장에도 이런 나무 장난감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렇다. 그건 장인들이 있던 시대에만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장난감은 재료나 색상이 화학적이다. 그 재료는 사용적 감각을 알게 하지 즐거움을 알게 하지 않는다. 이런 장난감은 실제로 빨리 죽고, 한 번 죽으면, 아이에게 그 사후의 삶을 남기지도 못한다.’  -롤랑 바르트의 <<현대의 신화>> 중 <장난감>

“The bourgeois status of toys can be recognized not only in their forms, which are all functional, but also in their substances. Current toys are made of a graceless material, the product of chemistry, not of nature. Many are now moulded from complicated mixtures; the plastic material of which they are made has an appearance at once gross and hygienic, it destroys all the pleasure, the sweetness, the humanity of touch. A sign which fills one with consternation is the gradual disappearance of wood, in spite of its being an ideal material because of its firmness and its softness, and the natural warmth of its touch. Wood removes, from all the forms which it supports, the wounding quality of angles which are too sharp, the chemical coldness of metal. When the child handles it and knocks it, it neither vibrates nor grates, it has a sound at once muffled and sharp. It is a familiar and poetic substance, which does not sever the child from close contact with the tree, the tble, the floor. Wood does not wound or break down; it does not shatter, it wears out, it can lst a long time, live with the child, alter little by littel the relations between the object and the hand. If it dies, it is in dwindling, not in swelling out like those mechanical toys which disappear behind the hernia of a broken spring. Wood makes essential objects, objects for all time. Yet there hardly remain any of these wooden toys from the Vosges, these fretwork farms with their animals, which were only possible, it is true, in the days of the craftsman. Henceforth, toys are chemical in substance and colour; their very material introduces one to a coenaesthesis of use, not pleasure. Those toys die in fact very quickly, and once dead, they have no posthumous life for the child.”  -from ‘Toys’ in Mythologies written by Roland Bart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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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ought on “롤랑 바르트 ‘장난감’

  1. 오… 드디어 우리 블로그에도 수준 높은 글이 올라오는구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질료와 형상이 생각나네.
    결국 좋은 형상을 지니려면 좋은 질료를 가지고 있어야 겠네. ㅋ
    장난감이 사라지고 나서, 아이에게 인상을 남긴다는 게 참 따뜻한 생각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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